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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글방

🌬 바람을 손에 쥐다 – 부채에서 에어컨까지, 여름을 견디는 우리의 방식

by 눈꽃가야 2025.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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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을 손에 쥐다 – 부채에서 에어컨까지, 여름을 견디는 우리의 방식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창문을 열어도 들어오는 건 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열기뿐이다. 그런데 문득, 어린 시절의 여름이 떠오른다.

 

그 시절, 우리 집에는 선풍기도 없었다.
부채가 유일한 손풍기였고, 그걸 흔드는 게 여름의 일상이었다.


1980년대 초, 회사를 다니던 시절 처음으로 선풍기를 구입해 통근 버스에 싣고 돌아오던 날, 나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 의기양양했다.


그 선풍기는 ‘신일’이라는 이름표가 달린 튼튼한 친구였다.

 

조선시대에도 여름은 더웠다.
임금은 여름이 시작되기 전, 신하들에게 부채를 하사했다. ‘하사선(下賜扇)’이라 하여, 단순한 선물이 아닌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중에서도 ‘합죽선’은 가장 귀한 부채로 여겨졌다.
대나무 껍질을 정성껏 엮은 이 부채는 바람보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었다.


나는 그 부채에 그림을 그려 선물하던 때가 있었다. 바람보다 소중한 건 마음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바람은 기계로 만들어졌다.


1882년, 미국의 스커리어가 전기 선풍기를 발명했고, 한국에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왔다.


그리고 1960~80년대, 집집마다 하나씩 선풍기가 놓이기 시작했다.

 

에어컨은 1902년 미국 캐리어가 만든 것이 시초다.


우리나라에서는 60~70년대에야 호텔과 기업 건물에서 가동되었고, 본격적인 보급은 90년대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바람의 가치를 잊어간다.


손으로 흔들던 부채 속 바람, 선풍기 앞에서 소리를 흔들던 어린 시절, 그 모든 것이 그립다.


지금, 다시 부채를 꺼내본다.


천천히 흔드는 그 움직임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잃어버린 여름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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