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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소리꾼 / 장사익의 노래 찔레꽃

눈꽃가야 2023. 2. 1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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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소리꾼 장사익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장사익 씨를 처음 만난 건 1994년 늦가을이다. 당시 근무하던 미술관에서 한국화가 홍모 씨의 전시 준비를 마친 전날 작가와 기자, 숙당 배정례의 따님인 박선영이 이런 뜻깊은 날 음악이 없으면 서운하지 않겠느냐며 장사익을 초청한 것이다.

 

그날 장사익은 태평소로 전국 대회에서 장원한 직후였다. 고종이 태어난 운현궁에서 눈물처럼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는 가을밤 대금 연주를 듣는 일은 호사 중의 호사였다.

 

그렇게 장사익을 알게 되었다.

성격이 소탈하고 꾸밈이 없으며, 걸음걸이도 조용조용했던 왜소한 그는 개량 한복차림이었다.

 

국악에 문외한이었지만 나는 그의 대금 소리가 좋았고, 그를 대금연주자로 알았다. 그 후 특별한 전시 때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그를 볼 수 있었다.

 

1997년 SBS에서 임꺽정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애독자였던 나는 그 연속극을 보게 되었고, 임꺽정 OST를 듣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단번에 그 노래에 매료되고 말았다. 「티끌같은 세상 이슬같은 인생」이란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바로 장사익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금연주자로 알았던 그가 가수라는 사실이 조금 낯설었지만, 그의 노래는 내 가슴 깊은 곳에 각인되었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짙고 깊은 목소리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세월이 흘러 2002년 12월 마포에 있는 불교방송국에 행사가 있어 참석했었다. 작고한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도 함께한 그 자리에 장사익 씨가 초대가수로 초청되었고, 「찔레꽃」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가슴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를 말이다.

 

어떤 말로 그의 노래를 표현할 수가 있을까?

 

그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면서 한과 회한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와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에 회오리친다. 그렇게 휘몰아친 한과 회한의 고통은 이내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편안함과 안온함을 준다..

 

그의 노래는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찔레꽃」을 가장 좋아한다.

 

 

「찔레꽃」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질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이 노랫말에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다.

핸드폰에 저장해두고 「찔레꽃」을 들었다. 그건 그의 노래와 무관하게 내가 찔레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돌무덤 옆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찔레꽃, 그 향기와 함께 근원을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느꼈던 꽃이라 더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장사익이 만들고 임동창이 피아노 연주, 편곡과 프로듀서를 맡아 6시간 만에 녹음을 한 앨범이 제1집 <하늘 가는 길>이고 「찔레꽃」은 이 앨범에 수록된 10곡 중 첫 번째 곡이다.

 

「찔레꽃」 탄생 배경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해거름 녘 벽에 가사를 붙여놓고 가만히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왔어요"(경향신문)

 

“한때 서울 잠실에 살았습니다. 1994년 5월쯤인가, 집 앞길을 걸어가는 데 바람결에 문득 좋은 향기가 스며있었어요. 처음에는 장미꽃 향기인 줄 알고 그 향기를 따라가 봤죠. 그런데 바로 뒤에 숨어있던 찔레꽃 향기였어요.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어요. 이게 바로 나로구나!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내 처지가 너였구나, 노래 가사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펑펑 울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이 곡을 만들었어요. 제 인생을 바꿔준 노래죠”(헤럴드 경제)

 

"자전적 노래예요. 화려한 장미꽃 사이에 볼품없이 피어있는 찔레꽃, 그러나 화려한 장미에겐 찔레꽃과 달리 어떤 향도 없죠. 아주 힘든 시절 찔레꽃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삼곤 했습니다"(코리아 패션 뉴스)

 

우리 민족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가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장사익을 꼽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음악 전문가는 아니다.

 

목소리도 표정도 심지어 걷는 모습까지도 너무나 조용조용하여 소녀 같은 장사익

그러나 노래를 부를 때는 전혀 다르다.

 

시냇물이 흐르듯 고요하게 시작한 그의 노래는 넓고 깊어 듣는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충분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크게 소리치고 싶었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지 하지 못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소리를 그는 단숨에 번에 토해준다.

 

소리꾼 장사익은

 

 

소리꾼 장사익(張思翼) 1949년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에서 태어나 광천중학교 거쳐 1968년 선린상업고등학교를 마치고 1993년 명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장사익이 음악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원에서 한동훈과 정경천에게 대중음악을 배운 뒤, 군에서는 문화선전대에서 가수로 노래를 하였다. 전역 후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생활을 위해서 무역회사, 전자회사, 가구점 등 회사를 전전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만은 잊을 수 없어 1980년 아마추어 국악 단체인 한소리회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단소와 피리를, 1986년 대금의 대가인 원장현에게 대금산조와 태평소를, 강영근에게 정악 피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카센터를 운영하면서 국악기를 배우던 장사익은 시간이 아까워 3년 동안 본격적으로 음악에 전념해보기로 하고 카센터를 정리한다. 이때가 1991년이다.

 

이때부터 태평소에 전념한 장사익의 노력은 그가 소속된 공주농악과 금산농악이 1994년 전주대사슴놀이에서 차례로 장원을 하면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 당시 이광수, 서유석, 임동창 등과 자주 어울렸던 그가 뒤풀이에서 부른 노래 솜씨에 매료된 임동창은 그에게 가수로 데뷔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장사익이 만들고 임동창이 피아노 연주, 편곡과 프로듀서를 맡아 6시간 만에 그의 자전적 이야기인 「찔레꽃」을 비롯한 광천 지방의 상엿소리를 재해석한 제1집 <하늘 가는 길>을 발표하면서 47살 늦은 나이로 자신의 꿈이었던 가수의 길에 들어선다.

 

임동창의 피아노 반주와 장사익의 절절한 노래를 들은 음악 평론가 강헌은 < 리뷰 >1996년 봄호에서 극찬하였고, 그 영향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듬해 1996년 KBS 국악대제전에서 그가 소속된 ‘뜬쇠사물놀이’가 대통령상 받은 뒤, 서태지와 아이들 2집 음반 ‘하여가’에 김덕수와 함께 태평소 연주를 담당한다. 그러나 가수로서 그의 인기는 아직 미미했다.

 

그런 장사익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1997년 TV 드라마 < 임꺽정 > OST ‘강물처럼 흘러서’, ‘티끌 같은 세상, 이슬 같은 인생’의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비로소 그는 대중가수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대중가요로 시작한 그의 노래의 근원을 그는 대중가요, 팝, 클래식 음악, 국악 등 모든 장르가 다 녹아있다고 한다.

 

이렇게 20년 넘게 노래를 한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이 생겼다. 2016년 성대에 혹이 생겨 수술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기간이 오히려 값진 시간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아랫소리가 자꾸 닫히고 서걱거려서 병원에 다녀왔죠.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막막했어요. 노래하는 사람에겐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벌써 2년쯤 됐네요. 절망적이었지만 건강하게 오래 노래하라는 긍정적 신호로 생각했어요. 수술하고 딱 7개월 쉰 다음 복귀 콘서트 <꽃인 듯 눈물인 듯>을 열었죠. 지금 부르는 노래는 수술 전에 부르는 노래와 달라요. 쉬면서 내 노래가 내 소리가 더욱 소중해졌어요. 앞으로 노래하면서 더욱 진실한 마음과 진정성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죠. 고난을 겪고 나면 행복이 더 귀하게 느껴지고 그러잖아요. 제게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랄까 그런 거예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애국가를 부른 장사익은 나이 일흔이 넘었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아름다운 가객의 「찔레꽃」을 오래오래 듣고 싶은 욕심이 있다. <자료 참조: IZM(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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