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가을 소풍과 삶은 밤 한 줄 / 밤의 효능

눈꽃가야 2023. 1. 4.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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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소풍과 삶은 밤 한 줄 / 밤 효능

 

공주에서 온 햇밤을 삶는다. 알도 굵고 빛나는 삼각뿔 형태의 전형적인 밤이다.

예전 우리 어머니는 어떤 식으로 밤을 삶았는지 내 기억에는 없다.

 

 

 

밤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대여섯 살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 가족은 오지라고 일컫는 무주군 안성면에 살았다. 방문만 열어도 덕유산이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그 아득한 곳에….

 

이른 새벽 소 꼴을 베러 가기 위해 아버지 일어나는 기척을 듣고 오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알밤을 줍기 위해서였다. 덩달아 잠이 깬 나도 눈을 비비며 오빠의 뒤를 따른다. 어젯밤 바람이 솔찮이 불어 알밤이 많이 떨어졌을 거란 기대에 부풀어 오빠는 이른 새벽이라는 것도 망각한 채 휘파람까지 불며 언덕을 오른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밤이 보이지 않는다. 당황한 표정의 오빠가 이곳저곳 살펴보지만 역시 밤은 없다. 우리보다 더 부지런한 누군가가 이미 주워간 것이다.

 

 

오빠의 어깨가 축 처지고 내 목은 한 뼘이나 더 길어졌다. 오빠가 텅 빈 밤송이를 힘껏 발로 찬다. 또르르 굴러 언덕 아래로 떨어지는 밤송이. 오빠처럼 오른발로 힘껏 밤송이를 찬다. 그러나 어쩌랴 밤송이와 함께 내 코빼기 고무신이 훌러덩 벗겨져 언덕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당황한 엉겁결에 맨발로 땅을 짚는다는 것이 그만 날카로운 밤송이 가시를 밟고 만 것이다.

 

‘아얏!’

 

오빠가 재빨리 달려와 밤송이에 찔린 내 발을 살펴본다. 살짝 밟아 상처는 나지 않았지만, 오빠를 빤히 바라보며 삐죽삐죽 울음을 터뜨리려는 내 어깨를 다독이던 오빠가 코빼기 고무신을 주워와 신겨주며 말했다.

‘가시나가 뭔 짓이냐? 양말도 안 신은 맨발로 다치면 어쩌려고.’

어찌나 발바닥이 아픈지 눈물이 찔끔 난다.

 

“오늘은 글렀어. 낼 아침에는 더 일찍 오자!”

 

우리가 언덕을 내려오려는 순간 바람이 분다. 기다렸다는 듯 알밤이 후드득 떨어진다. 오빠가 잽싸게 언덕에 올라 떨어진 밤을 줍는다. 꽤 큰 밤송이도 제법 떨어졌다. 오빠가 두 발로 밤송이를 벌려 흼 모자를 쓴 밤을 꺼낸 뒤 텅 빈 밤송이를 언덕 아래로 던진다. 오빠의 잠바 주머니 가득 밤이 찼다. 내 손에도 밤이 쥐어졌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오빠는 아쉬운 듯 밤나무를 힘껏 흔들어보고 발로 차 보기도 한다. 그러나 오빠의 힘으로는 어림없다.

 

그렇게 주워온 알밤!

그 밤은 밥 위에 얹어 삶아져 우리 손에 쥐어졌다. 삶은 밤 맛은 고구마나 감자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 중소도시로 이사를 하면서 밤을 줍는 일은 꿈에서만 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삶은 밤은 가을 소풍과 가을 운동회 날에나 먹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간식이기도 했다. 소풍 가는 날 내 가방에는 오징어 한 마리와 칠성사이다 한 병, 엄마가 어설픈 솜씨로 만든 김밥과 실로 꿴 삶은 밤 한 줄이 있었다. 소풍 가는 길 묶인 실을 풀어 삶은 밤을 한 개씩 빼먹던 그 달콤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오롯이 나만을 위해 준비된 삶은 밤 한 줄!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과외가 성행했다. 과외를 받을 수 없던 내가 친구와 함께 상대적으로 환경이 좋은 친구네 집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장학사였던 친구 아버지의 독특한 교육 철학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친구네 집에는 나보다 두세 살 위인 일하는 안자 언니가 있었다. 성찬과 다름없는 저녁 식사 후 안자 언니가 양푼 가득 삶은 밤을 들고 온 것이다. 소풍이나 운동회 때나 먹을 수 있는 그 귀한 밤이 친구네 집에서는 아무 때나 마음껏 먹는 간식이라는 사실에 갑자기 내가 한없이 초라해졌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주머니에 든 삶은 밤 몇 알을 손으로 만져보면서 나는 다짐했었다. 나는 앞으로 우리 부모님처럼 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겠노라고….

 

 

성인이 된 내가 직장이 있던 인사동에서 양평동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기다리던 종각역이나 종로 3가 역 근처 노점에서 연탄불 위 군밤으로 향수를 달래기도 했었다.

 

 

다시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부자는 아니지만 필요한 것은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밤을 깨끗이 씻어 솥에 넣고 찐다.

 

밤을 삶는 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인터넷을 뒤져 본 결과 삶는 것보다 찌는 것이 좋으며 물이 끓기 시작하면 센 불에서 5분 약한 불에서 15분 정도 더 끓인 뒤 불을 끄고 약 5분 정도 뜸을 들이라고 한다. 그대로 따라 해서 드디어 밤이 쪄졌다. 뜨거운 기운이 가시지 않아 뜨겁지만 서둘러 밤을 하나 입에 그대로 넣고 반으로 툭 쪼개 이로 자근자근 밤의 속살을 음미하듯 먹는다. 역시 고소하고 맛있다. 어린 시절 먹던 그때의 밤 맛 그대로다.

 

밤의 영양

 

밤은 율자(栗子)라고도 부른다. 원산지는 아시아·유럽·북아메리카·북부 아프리카 등으로 다양한데 나는 지역에 따라 한국 밤·일본 밤·중국 밤·미국 밤·유럽밤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품종은 재래종 가운데 우량종과 일본 밤을 개량한 품종으로 우리나라 밤은 서양 밤보다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으로 중·남부지방에서 재배를 많이 하며 8월 하순에서 10월 중순 수확을 한다.

 

 

밤에는 탄수화물·단백질·기타지방·칼슘·비타민(A·B·C)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아이들의 발육과 성장에 좋으며, 특히 비타민C가 많이 들어있어 피부미용은 물론 피로 회복과 감기예방에도 효능이 있다. 생밤에 들어있는 비타민C 성분이 알코올 산화를 도와 술안주로도 좋으며, 밤의 당분에는 위장 기능 강화에 좋은 효소가 있어 성인병 예방과 신장 보호에도 효과가 좋다.

 

 

밤은 주로 날로 먹거나 삶거나 쪄서 먹는데, 말을 말려 수분이 13% 정도 되면 당도가 더 높아진다. 꿀이나 설탕에 졸이거나 가루를 내어 죽·이유식 또는 묵을 만들기도 하고 통조림이나 술이나 차 등으로 가공하기도 하며, 각종 과자와 빵·떡 등의 재료로도 인기가 많으며, 특히 유럽 밤과자인 마롱글라세(marrons glaces)가 유명하다.

자료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밤 [chestnut] (두산백과)

 

 

지금은 밤송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는 밤송이를 바싹 말려 연료로 사용했으며, 밤송이 가시를 이용해 쥐구멍을 막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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