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야기/오늘의 탄생화

1월 19일 탄생화 소나무 / 소나무 전설과 꽃말

눈꽃가야 2023. 1. 19.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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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다. 잘 자란 소나무를 만나면 저절로 발을 멈추고 감탄을 하고 또 한다.

청운동 살 때 근처 고급 저택에 정원에 자리하던 멋진 자태의 소나무들

담 밖으로 드러낸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고 퇴근길 일부러 경사진 골목길을 걸어 다니곤 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소나무를 기르고 싶었다. 조경수로 사용되는 소나무 가격이 엄청나 구입할 엄두도 낼 수 없었지만, 그보다 소나무를 심을 공간도 없었다.

언제부터 소나무가 우리 민족과 함께 했을까? 이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궁금해진다.

우리 선산에 참나무는 많은 데 소나무는 별로 없다. 높은 곳에 십여 그루밖에 없다. 동생이 선산에 벚나무며 은행나무, 감나무 그리고 두충나무를 천여 그루 심었지만 소나무는 심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막냇동생은 우리 산에서 송이와 능이가 나지 않는 것은 소나무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가까운 근처 산에도 별도의 조림을 한 곳이 아니면 소나무가 별로 없다.

1970년 후반까지만 해도 이른 봄이면 근처 산으로 송충이 잡으러 갔던 일이 생각난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어쩌다 송충이를 만나면 호들갑을 떨고 나무젓가락으로 손을 떨며 잡던 송충이!

내가 송충이를 잡은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송충이가 많아도 그냥 소나무가 좋았다.

우리 아파트에도 소나무가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링거를 맞고 있거나 부목에 의지하고 있다. 산에서 좋은 바람과 자라야 할 나무가 도심의 아파트 안에서 살다 보니 향수병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기만 하다.

산책을 할 때 소나무 아래 의자에 앉기도 하고 솔방울을 주워오기도 한다.

울진에 갔을 때 울창한 금강송을 직접 보고 가슴이 뛰었다. 그 어떤 표현으로 소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을 설명할 수 있을까? 소나무는 마음의 고향 같은 나무가 분명하다.

소나무[ Korean red pine ]

 

소나무는 겉씨식물 구 과목 소나무과의 상록 침엽 교목으로 학명은 Pinus densiflora이다.

솔·솔나무·소오리나무라고도 한다. 한자어로 송(松)·적송(赤松)·송목·송수·청송이라 한다. 줄기는 높이 35m, 지름 1.8m 정도이며 수피는 붉은빛을 띤 갈색이나 밑부분은 검은 갈색이다.

바늘잎은 2개씩 뭉쳐나고 길이 8∼9cm, 너비 1.5mm이다. 2년이 지나면 밑부분의 바늘잎이 떨어진다.

꽃은 5월에 피고 수꽃은 새 가지의 밑부분에 달리며 노란색으로 길이 1cm의 타원형이다. 암꽃은 새 가지의 끝부분에 달리며 자주색이고 길이 6mm의 달걀 모양이다.

열매는 달걀 모양으로 길이 4.5cm, 지름 3cm이며 열매 조각은 70∼100개이고 다음 해 9∼10월에 노란빛을 띤 갈색으로 익는다. 종자는 길이 5∼6mm, 너비 3mm의 타원형으로 검은 갈색이며 날개는 연한 갈색 바탕에 검은 갈색 줄이 있다.

소나무 효능

잎은 각기·소화불량 또는 강장제로, 꽃은 이질에, 송진은 고약의 원료 등에 약용으로 쓴다. 화분은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며 껍질은 송기떡을 만들어 식용한다. 건축재·펄프용재로 이용되고 테레핀유는 페인트·니스용재·합성장뇌의 원료로 쓰인다. 관상용·정자목·신목(神木)·당산목으로 많이 심었다.

중국 북동부, 우수리, 일본에 분포하고 한국의 북부 고원지대를 제외한 전역에 자라며 수직적으로는 1,600m 이하에 난다. 남복송(男福松:for. aggregata)은 열매인 구과가 가지의 밑부분에 모여난다. 금송(for. aurescens)은 잎의 밑부분을 제외하고 전부 황금 빛깔을 띤다. 여복송(女福松:for. congesta)은 열매인 구과가 가지의 끝부분에 여러 개가 모여 달린다.

울진 불영사 계곡 소나무

금강소나무(for. erecta)는 줄기가 밋밋하고 곧게 자라며 외형적으로 소나무의 형태이나 곰솔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소나무와 곰솔 간의 잡종으로 본다. 처진 소나무(for. pendula)는 가지가 가늘고 길어서 아래로 늘어진 형태이다.

무주 삼공리 반송(천연기념물 제291호) (출처 GettyimagesKorea)

 

반송(盤松:for. multicaulis)은 줄기 밑부분에서 굵은 곁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수형이 우산처럼 다북하다. 은송(for. vittata)은 잎에 흰색 또는 황금색의 가는 선이 세로로 있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소나무 [Korean red pin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선산 독동리 반송(천연기념물 제357호) (출처 GettyimagesKorea)

소나무에 관한 전설

보은 속리 정이품송[ 報恩俗離正二品松 ]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약 15m, 가슴 높이의 줄기둘레 약 4.7m이며 가지의 길이는 동서가 19.9m, 남북이 19m이다. 수령은 500∼600년으로 추정된다.

1464년(세조 10)에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가지가 처져 있어 “연(輦)이 걸린다."라고 말하자 이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위로 들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연결이 소나무’라고도 하는데, 그 뒤 세조가 이 소나무에 정이품의 벼슬을 하사하여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설에는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였다는 말도 있다.

이 소나무가 서 있는 앞마을의 이름을 진허(陣墟)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그 당시 세조를 수행하던 군사들이 진을 치고 머물렀다는 데 연유한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충성스러운 전설을 안고 오래 살아오는 동안 각종의 피해도 받았는데, 특히 1970년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소나무에 큰 피해를 준 솔잎혹파리가 이 나무에도 피해를 주어 1982년 넓은 보호구역을 만들어 철책을 치고 길을 약간 우회시키는 등 보호 조치를 취하여 생기를 되찾게 한 바 있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보은 속리 정이품송 [報恩俗離正二品松]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삼품의 당상 소나무 전설

의왕시 오전동에 모락산에 정 3품 소나무가 있었다. 지금은 그 소나무가 죽고 없어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이 소나무에 대한 전설만 전해지는 데 내용은 이러하다.

효행으로 이름난 정조대왕은 비명으로 세상을 떠난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에 쓰고는 1년에 한차례 이상씩 꼭 성묘를 하였고, 수원성을 축조할 만큼 부왕에 대한 그리움이 대단했다.

당시에 정조가 한양에서 화산에 있는 부왕의 능까지 가는 노정은 과천 남태령을 넘어 인덕원에서 쉬었다가 다시 지지대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런데 이 인덕원에서 지지대고개를 넘어설 때까지 모락산의 커다란 소나무가 시야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정조는 그 소나무가 자기의 행차를 바라보며 호위하고 있다고 기특하게 생각하여 정 3품 벼슬을 내렸다.

그 후 이 소나무는 정 3품 벼슬로서 대우를 계속 누리다가 얼마 전에 말라죽어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자료 출처 : 의왕시 문화 관광 사이트 우리 고장 소개

「이형래와 남산봉 소나무 전설」[ 李-南山峯-傳說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자개리에 전해 오는 이형래와 면천 남산봉의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이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자개리에 사는 이명호의 8대 조부 이형래는 축지법에 능하여 큰 호랑이를 타고 덕산과 가야산을 한숨에 다니고 몇십 리, 몇백 리 밖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그는 호랑이를 타고 다니다가 집에 와서는 남산봉 소나무에 호랑이를 매어 놓곤 하였다. 그러면 호랑이는 소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을 자기고 때로 화평한 마을을 지긋이 내려다보곤 하였다.

세월이 흘러 이형래가 노환으로 죽자 호랑이는 넓고 양지바른 쪽에 앉아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곳이 명당임을 알아챈 가족들이 그 자리에 이형래의 묘를 썼는데 이곳이 지금의 면천면 자개리 새텃말이다.

호랑이는 이형래의 제삿날이면 찾아와 옛 주인을 그리워하듯 집 뒤의 커다란 바위에 앉았다가 사라졌다. 가족들이 개를 잡아 놓아 주었는데 호랑이는 그것을 먹으면서 보냈다고 한다. 3년 후 호랑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를 산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호랑이를 매어 놓았던 남산봉 소나무 아래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남산봉 소나무 주위 마을에는 무당이 많았다. 마을 사람들은 추수가 끝나면 해마다 소나무 아래에 떡시루를 쪄다 놓고 마을과 가정이 편안하도록 산신제를 지냈다. 하지만 이렇게 면천 사람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 온 남산봉 소나무는 고사하고 말았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형래와 남산봉 소나무 전설」 [李-南山峯-傳說]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소나무(Pine) 꽃말은 '불로장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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